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 같은 자식이라도 맏딸의 입장과 아들의 태도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부재로 세상에 남은 세 사람의 관계는 크게 달라진다.
‘안녕 아빠(학고재·1만5,000원)’는 대중 강연 전문가인 저자 오채원이 살아생전 살갑게 받들지 못한 아버지에게 뒤늦게나마 글로써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쓴 책이다. 누구라도 초보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장례에서 갑자기 상주가 된 젊은 자식으로서, 모쪼록 다른 이들은 당황스럽거나 멋쩍은 일을 덜 겪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저자는 임종으로 시작해 부고와 상조업체, 조문, 답례를 지나 유품 정리, 나아가 이후의 삶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풀어나간다.
이번에도 그럭저럭 퇴원하실 줄 알았다. 응급실에 실려 가신 게 벌써 여러 번. 몇 년 전에는 아예 병원 앞으로 이사를 했다. 젊은 날에 이미 목숨을 걸고 심장 수술을 했고 평생 동안 병치레가 잦으셨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아빠가 입원을 하셨다는 말에도 무감각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아빠가 떠나버리셨다. "누룽지가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저자 오채원은 무대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공연 진행자이자, 강단에서 소통의 각양각색을 이야기하는 대중 강연 전문가다. 그럼에도 정작 아버지와는 끝까지 편안하게 교감하지 못한 채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 다. 그렇게 서글픈 마음을 달래며 아버지를 애도하는 와중에,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맏이, 딸, 비혼 여성, 지식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자각했다. 관혼상제의 일처리가 으레 그러하듯, 부친상의 상주가 된 맏딸의 마음에는 상실감 말고도 또 다른 상채기가 남았다. '네 위치가 여기'임을 알려주는 민망하고 적나라한 현실에 발끈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살아생전 살갑게 받들지 못한 아버지에게 뒤늦게나마 글로써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세상이 확인 해준 '프리랜서 비혼 맏딸'이라는 위치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북돋워 '삶'을 야무지게 일구기 위해, 그래서 장차 맞이할 너와 나, 모두의 '죽음'을 차분하게 준비하기 위해서다.
장례에 프로가 어디 있나요 ─ 초짜 상주를 위한 장례 매뉴얼
『안녕 아빠』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누구라도 '초보'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장례. 갑자기 상주가 된 젊은 자식으로서, 모쪼록 다른 이들은 당황스럽거나 멋쩍은 일을 덜 겪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종'으로 시작해 '부고'와 '상조업체’, '조문’, '답례'를 지나 '유품 정리', 나아가 '이후의 삶'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풀어나간 이유다. 저자의 방식대로 가볍게 설명하자면 『안녕 아빠』는 유용한 '장례 매뉴얼'인 셈이다. 그런 만큼 상주의 입장에서도, 또 조문하고 위로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에 새길 만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착실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이 책의 힘은, 솔직하고 섬세한 말로 감정을 잘 골라 가족의 죽음 이후의 일상과 변화를 기록했다는 데 있다.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 같은 자식이라도 맏딸의 입장과 아들의 태도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부재로 세상에 남은 세 사람의 관계는 크게 달라진다.
상갓집도 사람 사는 집 ─ '산 사람'이 할 일들
일상처럼 병을 안고 사신 아버지이기에 세상 떠난 뒤의 대비도 웬만큼은 해두셨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유언은 없었고 사후 정리는커녕 당장 장례 준비도 된 게 없었다. 어느 죽음인들 황망하지 않겠느냐마는, '듬직하지 못해’ 미안한 맏딸은 온 정신 부여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례를 치른다. 마흔줄이 넘었어도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뒷정리를 하는 일은 안 해본 일투성이다. 너나없이 쏟아놓는 훈수는 따갑거나 무겁기 일쑤고, 남의 경우와 내 경우가 다르니 고맙긴 해도 마땅치가 않다. 평생 주부로 살면서 완고한 아버지를 수발하다 혼자 남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생활을 꾸리는 일도 조심스럽다.
건강하게 이별 하기 ─ 오늘도 여전히, 갈팡질팡 애도 중입니다
문제는 '애도’, 나의 마음이 제일 당혹스럽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데면데면하던 마음이 갑자기 애틋해지지는 않는다. 뻣뻣하고 투박하던 관계, 정리되지 않는 원망과 미웠던 기억.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고작 "누룽지가 먹고 싶다"는 말을 남긴 것마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사는 내내 아버지와 딸은 서로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지 못했다. 미우면 밉다, 고우면 곱다 제대로 표현을 해본 기억도 별로 없다. 나쁜 아버지여서도 아니고, 못된 딸이어서도 아니다. 누군가는 잘해드리지 못한 걸 크게 후회 할 거라 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살아 오신다 한들 전에 없이 살가운 딸로 바뀔 리도 없지 않은가. 아버지 생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그러했듯, 그 부재를 실감하고 애도하는 데서도 딸의 마음은 갈팡질팡 엇박자다.
아버지 부재 1년, 애도 1년의 기록
가족의 모양새도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버지 생전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나가서 밥줄을 챙기고, 아무 일 없는 듯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겪은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은 분노와 비탄 사이를 오갔다. 시원스럽게 소리 내 우는 건 아직도 어색하다. ‘다들 그렇다'기에 그런 줄로만 알고 입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째서 이렇게 애도가 자연스럽지 못한가. 다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 어떻게 원통한 속을 풀어내는지, 과연 그때의 후회와 다짐을 다져 남은 이들과 잘 살아가는지 궁금해진 저자는 스스로 이렇게 묻고 답했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정직하지 못했다. 난 아빠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동시에 미워했다. 나의 모든 불행이 아빠 탓이니까. 당신 자신이 가장 중요한 분이니까. (...) 이제야 알겠다. 나의 애도는 아직 시작조차 안 됐음을, 내 마음속 시계는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음을. 그래서 중요한 매듭을 짓지 못했음을, 아직도 아빠를 보내드리지 못했음을." 일기 쓰듯 속마음을 적어 내려 간 1년은 비로소 온전히 아버지 생각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소리 내 울 수 있었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애도임을 받아들인 지금, 이제야 아버지에게 "안녕"을 말한다.
저자 사진. 출처 : 차경
[저자 소개]
오채원 커뮤니케이션과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우리 옛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소통해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 기록을 파고든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 속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아 오늘의 언어와 방식으로 친절하게 풀어준다. ‘실록 읽어주는 여자’라는 별칭으로 강의를 하고 칼럼을 쓰며, 스토리텔링 콘서트 무대에서 ‘세종 이야기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긴 시간 대중 앞에서 ‘소통’을 주제로 이야기해왔음에도 정작 아버지와는 끝까지 편안하게 교감하지 못한 채 이별했기 때문이다. 죽음과 애도 앞에서 맏이, 딸, 비혼 여성, 지식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새삼 다시 자각하며, 이제부터의 ‘삶’을 더욱 열심히 일구고 남아 있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상을 주셨습니다! '2020년 5월 이달의 새뉴스게릴라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요(제가 해석하기론 '이달의 신인 기자상'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제 글에 '좋아요' 꾸욱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 오채원 시민기자는 <실록 읽어주는 여자>라는 연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다양한 사회상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람들이 저마다의 세종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공감의 역동을 선사하는 세종이야기꾼"이라고 밝힌 오채원 시민기자를 2020년 5월 이달의 새뉴스게릴라로 선정합니다.
1. 세종의 고독력孤獨力 경영 – 세종을 세종으로 만든 힘 (고독력, 셀프리더십) 2. 세종의 오득五得 공감 – 세종리더십의 다섯 가지 열쇳말 (리더십) 3. 세종시대의 행복론 공향共享 - 더불어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 (행복자산) 4. 창의는 위기 속에서 꽃핀다 – 세종의 위기관리 리더십 (위기관리, 창의성) 5.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 – 리더의 멋과 힘 (시각적 메세지, 리더십) 6. 식솔력食率力 - 왕의 밥상 속에 펼쳐진 리더십 (조선 음식문화, 리더십) 7. 이도李祹 씨네 가족 이야기 – 세종 가족의 소통법 (가족소통)
본 강좌는 기업・대학・기관 등에서 16년간 소통・인문학・세종리더십 등을 강의해왔고, 커뮤니케이션 석사 및 동양철학 박사(수료)이며, 방송・음악회를 통해 대중과 만나온 세종이야기꾼 오채원이 진행합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한양에는 성균관이라는 공립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동서남북 네 곳에 4부학당이라는 공립 중등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지방에서는 향교라는 공립 중등학교가 운영됐습니다. 사학교육기관으로는 서원이 있었고요.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운영된 이 간성향교는 세종 2년인 142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간성읍 상리 쇠롱골(당시 용연동)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려 600여 년 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공간에서 선비의 덕,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께 전해드리고, 또 그와 관련된 음악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렇게 간성향교는 오랜 역사 위에 차츰차츰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가며,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겠지요. 그 역사의 한 자락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